의약품과 디지털 치료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융합 의약품'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기존 디지털 치료제(DTx)가 소프트웨어 단독 치료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의약품·인지행동치료·생활습관 중재 등이 결합된 형태로 '디지털 치료제 2.0' 단계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케네맙) 투여 환자에게 로완의 인지기능 개선 디지털 치료기기 '슈퍼브레인'을 병행 적용한 임상을 최근 마무리 했다. 레켐비가 뇌 속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알츠하이머 병리 진행을 늦추는 약물 치료라면, 슈퍼브레인은 기억력 저하가 있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인지중재치료 기반 맞춤형 훈련을 제공하는 디지털 치료제다.
로완 관계자는 “슈퍼브레인을 레켐비와 병행한 임상을 진행했다”면서 “환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의약품과 디지털 치료제의 보완적 사용이 의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디지털 치료제 기업도 의약품과 융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웰트는 국내 디지털 치료 솔루션 개발 기업 중 하나로, 초기에는 불면증·우울증·알코올 사용 장애 등 특정 질환에 소프트웨어 단독으로 처방하는 디지털 치료제 모델을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약물과 디지털 치료를 병행하는 통합 치료 모델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웰트는 수면보조제 '졸립지'에 수면 인공지능(AI) 에이전트 'AgentZ'를 결합해 AI 융합 수면 치료 모델을 만들었다. 졸립지 패키지에 부착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SleepZ 앱에 연결되며, 이후 AI는 수면 로그,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집된 생체 신호, 활동량, 생활 패턴, 일주기 리듬 등 실사용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다. AI는 불면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졸립지를 복용해야 하는 시점과 가장 효과적인 복약 타이밍을 개인별로 안내한다. 이 제품은 'CES 2026'에서 AI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제약사도 디지털 융합 모델을 신약 개발 단계부터 내재화하기 시작했다. 한미약품은 비만·당뇨 치료제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GLP-1 계열)의 임상 3상과 동시에 AI 기반 생활습관 개선·운동 중재 솔루션을 결합한 디지털 융합 의약품 개발을 추진했다. 운동중재 기반 디지털치료제 개발 기업 베이글랩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개발했다. 비만 약물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치료제를 활용, 체중 감량과 생활 습관 개선을 돕는다.
디지털 융합 의약품의 국내 확산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상업화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Rejoyn'은 우울증 치료용 디지털 치료 앱으로, 표준 항우울제 약물 처방과 함께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환자는 스마트폰으로 인지행동치료(CBT) 기반 과제를 수행하고, 약물 치료와 병행해 우울 증상을 개선시키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미국·유럽에서는 천식 흡입기+스마트센서(Propeller Health), 오피오이드 중독 약물+디지털 행동중재(reSET-O) 등 다양한 약+디지털 병합 패키지가 보험체계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과 디지털 치료제의 융합은 자연스러운 확장”이라며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