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장 등 러시아 유력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해 온 러시아 출신 망명 예술가가 폴란드의 한 국경 도시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6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폴란드 루블린 지방검찰청은 전날 동부 국경 도시 비아와포들라스카에서 러시아 국적의 예술가 로베르트 쿠조프코프(활동명 세묜 스크레페츠키)가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마르친 코자크 루블린 검찰청 대변인은 “피해자는 머리에 한 발을 포함해 총 5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며 “사건 직후 달아나던 벨라루스 국적자 2명을 현장에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독립 매체 메두자에 따르면 용의자 중 한 명은 경찰을 피해 비아와포들라스카 소재 벨라루스 영사관 담벼락을 넘으려다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쿠조프코프는 러시아 알타이 지역 출신으로, 현지 당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지난 2021년 폴란드로 망명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카디로프 체첸 수장뿐만 아니라 고(故) 알렉세이 나발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을 풍자하는 캐리커처와 영상을 제작해 온 인물이다.
특히 그는 사망 불과 사흘 전인 지난 12일 '러시아의 날'을 맞아 독일 베를린을 방문해 이오시프 스탈린과 푸틴 대통령을 성화(聖畵) 형태로 풍자한 그림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유럽 내 러시아 망명 예술가와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체첸의 독재자 카디로프가 배후에 있는 '표적 암살'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쿠조프코프는 사망 이틀 전에도 카디로프와 그의 아들 아담을 돼지로 묘사하는 등 체첸 지도부를 조롱하는 작품을 온라인에 게시한 바 있다.
해외에 거주 중인 러시아의 유명 미술품 수집가 마라트 겔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예술가가 살해당한 것은 끔찍한 비극”이라며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체첸의 '그 독재자'가 저지른 짓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카디로프는 그동안 러시아 국경 밖에서도 자신을 비판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테러와 암살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한편, 사건이 발생한 폴란드 당국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서방의 군사 물자 허브인 폴란드를 겨냥한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정보 활동 및 사보타주(파괴공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야체크 도브진스키 폴란드 특무장관 대변인은 “국가보안국(ABW)이 경찰 및 검찰과 긴밀히 협조해 범행 동기와 배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