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대금 지급기일을 둘러싼 이른바 '60일 관행'이 중소기업 유동성 악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법은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 지급을 명시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60일이 사실상의 기준처럼 굳어지며 제도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고금리 기조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인공지능(AI) 전환 비용 증가 등으로 기업 현금흐름 안정성이 중요해지면서 납품대금 지급기일 단축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존 제도가 전자결제와 금융 인프라가 고도화된 현 산업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은 원사업자가 물품 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 가능한 짧은 기간 안에 납품대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60일은 법정 상한선이자 지연이자 부과 기준일 뿐 권장 지급기일은 아니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 상한선이 관행적 기준처럼 작동하고 있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건설업은 월 마감 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다시 60일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월초 납품 물량은 실제 대금 회수까지 90일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며 “대기업이 이렇다 보니 중소 건설사도 따라가고, 결국 한 곳이 무너지면 연쇄 부실이 발생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자재 공급업체의 부담은 더 크다.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원자재는 선결제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공·생산·납품 대기 기간까지 포함하면 원자재 구매 시점부터 최종 대금 회수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중소기업이 사실상 원청의 운영자금을 대신 부담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기업이 법 위반을 피하는 수준에서 지급기일을 설정하다 보니 실제로는 '60일 임박 지급'이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의 지급 관행이 중견·중소기업으로 연쇄 전이되면서 산업 전반에 고착화했다는 설명이다.
납품대금이 60일에 가까운 시점에 지급되면 협력업체는 원자재비와 인건비를 선지출한 상태에서 장기간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는 하위 협력사로 갈수록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1970년대 제도 도입 당시 만들어진 기준이 전자결제와 금융 인프라가 발전한 현재 산업 현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전자세금계산서와 계좌이체 중심 지급 환경이 정착되면서 지급기일 단축을 위한 기술·제도적 기반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
이에 따라 납품대금 지급기일을 30일 또는 45일 수준으로 단축하는 법안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지만, 이해관계 문제 등으로 입법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지급기일 단축 흐름을 보인다. 유럽연합(EU)은 공공부문에 원칙적으로 30일 이내 지급을 의무화했으며, 기업 간 거래에서도 30일 상한 적용 강화를 추진 중이다. 미국은 연방기관 중심으로 '30일 지급 원칙'을 정착시켰고, 영국은 기업별 지급 관행 공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납품대금 지급기일 문제를 단순한 거래 조건이 아닌 공급망 전체의 자금 순환 구조와 직결된 과제로 본다. 중소기업이 국내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약 1900만명의 고용을 담당하는 만큼, 신속한 대금 지급은 개별 기업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안정성과 경제 활력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60일은 법정 상한선으로, 관행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AI 전환과 글로벌 경쟁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현금흐름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지급 구조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