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에 전기 신호를 전달해 치매,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전자약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자약은 애플리케이션(앱) 내 게임·학습 등으로 질병을 예방·관리하는 디지털치료기기(DTx)와 달리 우리 몸을 직접 자극하는 만큼 증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전자약 기업은 확인된 효능을 바탕으로 치료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신경질환 기기 스타트업 뉴로그린은 지난해 10월부터 한림대의료원과 웨어러블 전자약 '새로그린'의 혈관성 치매·경도인지장애 환자 24명을 대상으로 한 탐색 임상에 돌입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생긴 새로그린은 귀 뒤쪽에 전기 신호를 보내 감각 섬유를 운반하는 미주신경을 자극한다. 부교감 신경을 오가는 통로에 치매 유발 물질이 쌓이지 않게 하는 원리다. 회사는 지난 2022년 혈관성 치매 전임상 동물모델에서 '뇌 청소' 기전의 유의미한 효능을 입증했다.
정지훈 뉴로그린 대표는 “뇌에 강한 충격을 주는 다른 전자약과 달리 새로그린은 노폐물이 잘 빠져나갈 수준으로만 전류를 전달해 부작용 우려가 적다”면서 “현재 치료제가 부재한 혈관성 치매 극복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뉴로그린은 비만, 마약 중독 관리 분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신경을 자극해 갈망을 해소하는 치료 방식이 주효하기 때문이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달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새로그린이 일반인의 식사량 조절에 기여한 연구 초록을 공개했다.
정 대표는 “임상을 병행하면서 일반인 대상 웰니스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와이브레인은 지난해 말 우울증 전자약 누적 처방 18만건을 돌파했다. 지난 2022년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 평가 유예 대상에 선정된 지 3년여 만이다. 와이브레인의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는 두피에 전극을 부착하고 직류 전류를 흘려 좌측 전전두엽(DLPFC)을 활성화한다. 뇌 좌우 균형이 회복되며 우울 증상이 개선된다. 약물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나 항우울제 복용이 어려운 임산부, 소아·청소년에게 효과적이다.
와이브레인은 최근 정부의 도전적 문제 해결형 연구개발(R&D) 사업인 'K-문샷'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뇌 신호를 읽고 자극해 신체·인지 한계를 극복하는 뇌-컴퓨터인터페이스(BCI) 기술 개발에 도전한다. 이와 함께 올해 3분기 우울증 전자약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도 목표다.
자기장으로 뇌신경 세포를 자극해 우울, 불안, 강박 등 정신과 질환을 치료하는 리메드는 지난해 전자약 부문 매출 39억1300만원을 기록했다. 2024년 매출 30억3500만원에 비해 28.8% 증가했다. 뇌 관련 치료에서 미용 분야로 영역을 넓힌 덕분이다. 리메드는 올해 미국과 중국을 대상으로 공급을 확대해 성장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전자약 시장 성장성도 유망하다. 시장조사업체 GMD 리서치는 세계 전자약 시장 규모가 연평균 7.3% 성장해 2030년 390억6000만달러(약 59조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자약 기술은 연구기관의 기초 연구에서 시작해 임상으로 확장됐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라면서 “화학 기반 약물 부작용과 내성을 극복할 유망 시장인 만큼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