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등 연료 가격 안정세와 전력도매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을 개선한 이유가 컸다. 하지만 호실적에 대한 반응에는 미묘한 불편함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산업계 전기요금 인하 요구가 거센 만큼 이번 호실적은 공기업 한전 입장에선 가시방석처럼 느껴질 수 있다.
지금 '전기'는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는 분야다. 전 지구적으로 인공지능(AI) 시대 전력수급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부족한 송전망 문제와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전기요금 개편까지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산업용 전기는 갑론을박이 치열한 곳이다. 과거 많은 국민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산업용 전기에 불만을 표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기업들이 전기요금을 낮춰달라 아우성이다.
2024년 인상이 기점이었다. 당시 정부와 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인상했다. 2022년 이후 7번째 인상이었고 해당 기간 인상 폭은 60% 수준에 달했다. 반면 주택·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했다. 산업용과 주택·일반용 요금 역전에 불만이 터졌고, 주택·일반용 인상 요인을 산업계가 보전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산업계 불만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구조 개편에 들어갔고, 철강업계 역시 가동 축소와 일부 사업장 폐쇄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제조업 곳곳에서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엑소더스 현상을 우려한다. 최근에는 부산교통공사와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 영역에서도 전기요금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문제가 요금 인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귀책 사유의 시시비비는 접어두고, 어쨌든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는 수십년간 전기를 저렴하게 사용한 '부채'를 안고 있다. 산업용 전기를 인하한다면 이에 따른 풍선 효과는 반드시 발생한다.
최근 정부는 전기요금 개편 카드를 만지고 있다. 개편의 핵심 내용은 '계시별(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와 '지역차등 요금제' 도입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불 보듯 뻔하다. 분명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제기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필수재로 사용하는 전기 특성상 요금 개편은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셈이다.
바라는 바는 전기요금 개편을 통해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산업용·일반용·주택용의 단일 요금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정부의 계시별 요금과 지역차등제 검토는 힘을 실어주고 싶다. 변화에 고통이 수반된다면 선택권이라도 보장해 차선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두가 고품질의 전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1년에 한두 번 정도의 정전을 감수하고 보다 저렴한 전기를 쓰고 싶을 수 있다. 동하절기 냉난방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평시 요금은 낮추는 상품도 생각할 수 있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영자는 1년간 고정가격으로 전기를 거래하는 헤지 상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일부 사업장은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를 통해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직접 거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단일요금 체계로는 수많은 고객의 세분화된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계시별 요금과 지역차등제가 전기요금 상품 다양화의 시발점이 되길 응원한다. 한전 역시 새로운 요금 상품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품이 다양해질수록 국내 전력산업은 수급 안정을 넘어 고객 서비스 고도화로 진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