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기술창업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작 성장 단계에 들어서면 투자 절벽에 부딪힙니다. 이제는 창업 숫자를 늘리는 것만 아니라 스케일업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미숙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은 여성벤처기업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투자 사각지대 해소'를 꼽았다. 초기 창업부터 후속 투자까지 이어지는 자금 공급 체계를 만들고 수출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함께 확대해야 여성벤처기업이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 회장은 “2025년 여성 벤처창업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금은 1348억원으로 전체의 2.3%에 불과하다”며 “여성 기술기반 창업은 늘어나는데 성장 단계에서 필요한 투자 자금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150억~200억원 안팎에 머물러 있는 여성 특화 펀드 재원으로는 시리즈B 이상 후속 투자를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기에는 소규모 투자가 가능한 마이크로 펀드를 활성화하고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최소 500억원 이상 규모의 여성전용 펀드가 필요하다”며 “초기부터 성장 단계까지 끊기지 않는 투트랙 자금 공급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도 직접 투자 생태계 조성에 뛰어들었다. 올해 모태펀드 출자사업과 연계해 운용사와 협업하고, 선배 여성벤처기업인 등이 출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약 30억원 규모의 여성벤처 투자 트랙을 마련했다. 성 회장도 후배 여성벤처기업의 투자 기반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개인 자금 2억원을 출자했다.
성 회장은 “협회가 투자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선배 기업인들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후속 출자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발굴해 후속 투자와 기업공개(IPO)까지 이어지는 성공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투자와 함께 성 회장이 올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글로벌 진출이다. 내수시장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벤처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협회는 그간 일본, 중국, 베트남, 몽골, 카자흐스탄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UAE 샤르자 상공회의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중동시장 진출 기반을 넓혔다. AI·ICT·바이오·뷰티·헬스케어 등 신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중동을 여성벤처기업의 새로운 기회시장으로 보고 현지 기업·기관과의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성 회장은 “샤르자를 비롯한 UAE와 중동 국가들이 여성 경제활동과 혁신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라며 “단순한 해외 전시회 참가를 넘어 현지 기업과 투자자,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여성벤처기업인의 날'에는 그간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여성기업인과 주한 여성 대사 등을 연결하고 IR과 수출상담 등을 결합해 국내 여성벤처기업의 실질적인 해외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회원 간 네트워킹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언어 장벽을 호소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최근 회원 대상 영어 동아리를 만들었다. 초급부터 고급까지 수준별로 나눠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하며 전국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일본어, 중국어 등 다른 외국어 모임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문화·산업별 소모임과 기능별 분과위원회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단순 친목을 넘어 사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거래처나 협력사를 소개하는 등 실질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게 목표다.
AI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협회는 조직 개편을 통해 'AI융합산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AI 교육을 시작으로 AI 기술 적용, 기업 간 기술 매칭 등 추진 한다. 향후 AI·바이오·헬스케어·에듀테크 등 여성 창업자들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 분야의 창업·성장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협회 자체의 성장 기반 강화도 추진한다. 현재 임차 공간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 재정적 안정성과 회원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도록 사옥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 조직도 현재 5개(광주전남·대구경북·대전충청·부산경남·전북) 지회에서 제주·강원 등으로 확대해 전국 단위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성 회장은 “여성벤처기업은 이제 보호해야 할 기업군이 아니라 기술과 수출, 고용을 만들어내는 벤처생태계의 성장 주체”라며 “투자에서 글로벌 진출, 네트워크까지 기업이 실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성공한 여성 기술기업의 롤모델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에코트로닉스를 수출기업으로 성장시키며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기업이 답습하지 않도록, 수출 선배기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모아 후배기업들에게 전수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