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전자 등 일부 임직원이 최대 실적에 따른 성과급 명문화를 요구하며 노사 갈등이 격화되자 학계 전문가들이 이성적 판단을 촉구했다. 회사 성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과도한 성과급 요구는 상법을 비롯한 국내 법체계와 충돌할 소지가 있고 국내 첨단사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주주행동연구원은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주 관점에서 본 최근의 파업 이슈-삼성그룹 사례를 중심으로' 주제의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근로자 성과급 등을 계기로 발생한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파업 사례가 기업 운영과 성장, 주주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갈등, 기업 공급망 피해 등 사회적 현안으로 부각된 데 대해 심도 있는 토의를 가졌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급 인상과 영업이익의 성과금 배분 등 삼성바이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가 상법이 정한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할 소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앞서 삼성바이오 노동조합은 기본급 14.3% 이상과 1인당 3000만원의 격려금, 영업이익의 20% 성과급 배분, 자사주 지급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초과이익분배금(OPI) 기준을 영업이익의 15%로 고정하고, 성과급 상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권 교수는 “회사법적 관점에서 이익 처분은 주주총회 고유의 권한이자 주주의 몫”이라면서 “노조는 인사고과나 인수합병(M&A) 등 경영 사안에 사전 합의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이사회 고유 권한을 침해하고 상법이 정한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영업이익을 토대로 법인세나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을 산출하기 전에 이익을 분배해달라는 요구는 주주의 권리보다 앞서기 때문에 법 이론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자사주 지급 역시 회사의 장기적인 경영 판단을 해칠 것으로 전망했다.
권 교수는 “자사주를 취득하려면 배당 가능한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회사가 수년간 꾸준히 수익을 실현하는 것을 보장하기 어렵다”면서 “바이오산업 특성상 많은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우선 사서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배정하는 것이 맞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자사주 지급 역시 주주총회 승인 사항인 만큼 주주 권리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강승훈 인하대 바이오제약공학과 교수는 인류 건강과 직결된 바이오의약품 특성을 고려해 노조의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강 교수는 “의약품은 시판되는 제품도 고품질을 유지하는지 규제기관이 상시 감시할 정도로 환자 건강과 연관된다”면서 “살아있는 세포로만 생산할 수 있는 바이오의약품은 특히 제조 공정이 멈추는 사태가 발생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로서 삼성바이오의 신뢰 손상도 우려했다. 고객사와 사전에 약속한 물량을 납품하지 못하면, 고객사를 넘어 의료 현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처방 자체가 급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삼성바이오가 8공장까지 건립을 계획한 것은 기존 수주 이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대량의 의약품을 생산한다는 기대가 깔려있다”면서 “브랜드 신뢰가 저하돼 공장을 짓고도 의약품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성장은 물론 회사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회사 주체로서 노조의 유연한 판단을 주문했다. 송 교수는 “경영진이 무능하거나 부패하다면 파업이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그런 상황이 아니다”면서 “비합리적인 주장으로 투쟁만 내세우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 배분 명문화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영업손실이 났더라도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그 폭을 줄였다면 충분히 성과급을 요구할 수 있다”면서 “현재 요구하는 명문화는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승길 한국ILO협회장은 국가 핵심 산업 내 '필수유지업무' 제도 개선을 역설했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필수유지업무 사업장은 인력의 50% 내에서 대체근로가 허용된다. 철도, 항공, 수도, 전기, 병원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번 파업을 진행하는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는 빠져있다. 이에 대체근로 허용 범위 확대와 전문가 중재 제도 강화, 긴급조정권 발동 유연화 등을 제안했다.
정무권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는 노동 기여에 대한 보상 요구가 기업 핵심 이해관계자인 주주 이익과 충돌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삼성바이오의 경우 주주에 대한 단기 배당을 희생하면서 미래 성장을 위한 설비 투자에 매진하고 있는데,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근로자에게 이전할 경우 미래 투자와 기업가치 제고에 활용할 재원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성과급 기준을 단순 영업이익 규모보다는 영업이익 증가분 또는 잉여현금흐름 증가분에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면서 “성과급 일부를 성과조건부 주식(RSU) 등 주식 기반 보상으로 지급하는 혼합형 구조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 주주행동연구원장(세종대 경영학부 교수)은 “노동자가 회사 성과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최근 노조 주장에는 장기 투자와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 미래 경기 변동까지 함께 고려하는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노조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어떻게 다시 '함께 성장하자'는 협상 테이블로 가져와 정상화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