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새로운 '기술 도로'를 설계할 시간이다
지금 세계는 속도의 경쟁이 아니다. 길의 경쟁이다.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새로운 길을 만드느냐의 싸움이다.
중국의 '차선 변경(환도초차·换道超车)' 전략은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기존 기술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판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반도체에서는 실리콘의 한계를 넘는 비스무트 기반 2차원 신소재로, 배터리에서는 나트륨이온·전고체 기술로 표준을 선점하고 있다. AI에서는 딥시크처럼 제한된 자원으로도 경쟁력 있는 모델을 만들며 산업의 진입 장벽 자체를 낮추고 있다.
6G와 양자통신, 저궤도 위성에서도 기술과 인프라, 규칙이 동시에 설계되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공통점은 하나다. 기술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서방의 기술 봉쇄가 역설적으로 중국을 추격 경로에서 밀어내며 새로운 길을 만들게 했고, 원료·생산·표준·시장을 국가가 하나로 묶는 수직 통합 체계가 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흐름은 세계를 미국 중심의 기술 연합과 중국 중심의 자립 생태계, 두 개의 기술 질서로 나눌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는 한국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기존 도로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는 국가였다. 메모리 반도체, 배터리, 제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새로운 도로가 깔리는 순간, 이 강점은 빠르게 약점으로 바뀔 수 있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한국은 계속 남이 만든 길에서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인가.
한국의 차선 변경,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희토류가 없으면 세계 경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전기차 모터, 풍력 발전기, 방산 장비까지 고성능 영구자석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공급망의 9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한국의 가장 강력한 돌파구가 나온다. 희토류 프리 영구자석 기술이다.
질화철(Fe-N) 자석과 테트라테나이트(L10 Fe-Ni)는 희토류 없이도 고성능 자기력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소재다. 질화철은 지구상에 풍부한 철과 질소만으로 기존 네오디뮴 자석에 필적하는 성능을 이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테트라테나이트는 운석에서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되는 소재였으나, 최근 수 초 만에 인공 합성하는 기술이 개발되며 상용화 가능성이 열렸다. 이 기술들은 재료 비용을 최대 80%, 탄소 배출을 70% 이상 줄이면서 중국이 설계한 '자원 기반의 도로'를 근본적으로 무력화한다. 한국재료연구원(KIMS)은 이미 망간-비스무트(Mn-Bi) 자석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달성하고 상용화 가능성을 확보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차선 위에 서 있다.
희토류 프리 자석 외에도 저전력 AI 반도체, 제조 AI·로봇, AI 시대 전력 인프라, 바이오 제조와 오가노이드, AI 기반 소재 설계가 한국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그러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기술이 완성된 뒤 표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표준으로 시장을 먼저 여는 나라가 결국 그 시장을 지배한다.
추진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와 장영실을 곁에 두었듯, 대통령 주변에 경제·인문·과학기술·AI 자문 기구가 항상 함께 움직여야 한다. 회의 결과가 전 연구 조직으로 즉각 퍼지고, 인문과 기술, 경제와 AI가 세트로 움직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일론 머스크처럼 이미 와 있는 미래를 만드는 세계적 기업가들을 초청해 장관과 국회의원이 함께 강의를 듣고 협력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그 내용을 국민도 함께 시청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은 연간 약 130조 원 규모의 R&D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률 95% 이상이라는 숫자는 도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실패를 감수하고 세계적 두뇌를 모으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성공률 30~40%가 정상이다. 게임 체인저 기술 맵을 만들고, 국가적 추진 체계로 전력 질주해야 한다. 중국이 연간 500만 명의 이공계 졸업생을 배출한다. 한국은 전 세계 인재를 끌어들이고 미국과의 3,500억 달러 투자 협력도 연구와 결합해야만 길이 열린다.
에디슨은 가스등 업계의 논의를 전구로 구현했고, 포드는 도축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 공장을 만들었다. 와 있는 미래를 발견하고, 앞당기고, 현실로 만들면 된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추격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다.
이광재 PD(전 국회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