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넥슨, 크래프톤. 오늘날 코스피와 글로벌 증시 거물급 종목들의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의 장소에서 멈추게 된다. 바로 대전광역시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캠퍼스다. 흥미로운 점은 KAIST 출신 창업자의 등장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결과가 아니라, 56년 전 한 이방인이 남긴 정교한 시나리오, 즉 '터먼 보고서'에 의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점이다.
1970년 우리나라는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국민총생산(GNP) 대비 0.3%에 불과하고 과학자 한 명 찾기조차 힘든 척박한 기술 불모지였다. 이때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터먼(Frederick Terman) 스탠퍼드대 교수가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스탠퍼드 연구실에 첨단 장비와 천재적 인재들을 모았다. 또, 제자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에게 사비로 창업 자금을 빌려주고 팔로알토의 작은 차고에서 HP를 탄생시키며 대학이 혁신의 심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터먼 교수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모방'에서 '혁신'으로 바꿀 거대한 창업 생태계의 청사진을 들고 왔다. 터먼은 대학이 지식의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진기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국 특유의 유교적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능력주의 대학교육 시스템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의 보고서에서 제시한 핵심 내용은 대학, 기업,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강력한 혁신 동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였다. 보고서를 기초로 우리나라 정부는 예산 지원과 함께 법적 프레임워크와 병역 혜택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을 결정했고, KAIST는 산업계가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 중심의 문제 해결형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교육을 시작했다.
터먼 교수의 설계도는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PC)가 출시되는 시점에 국내 최초의 벤처 붐으로 표출되었다. 국산 컴퓨터, 프린터 개발의 기틀을 닦은 퀴닉스(Qnix), 한글 정보화의 초석을 놓은 휴먼컴퓨터, 그리고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의 신화를 쓴 메디슨(Medison) 등이 그 주역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창업자가 대학 교수나 수석 연구원이라는 안정된 커리어를 뒤로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연구실 단위의 혁신적 실험은 전길남 교수의 시스템 구조 연구실(SALAB)에서 이뤄졌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 교수는, 국가 주도의 경직된 R&D 패러다임에 함몰되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이 실패의 두려움 없이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기술적 샌드박스를 구축했다. 여기서 배양된 창의적 에너지는 훗날 네이버, 넥슨과 디지털 거성들을 탄생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1999년, 실리콘밸리의 한인 사업가 이종문 회장의 기부와 정보통신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스탠퍼드 창업자 교육 프로그램은 디지털 창업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과의 협력으로 설계된 이 프로그램은 KAIST 교수, 교직원이 운영 주체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국내에 자생적인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도 우리가 터먼의 유산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터먼은 이미 반세기 전, 한국 대학들의 창업 교육 수준이 매우 낮으며 암기 위주의 교육이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학과 산업의 유연한 결합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나, 수직 계열화된 재벌 체제는 스타트업과의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에 여전히 인색하다.
결국 우리가 다시 터먼 보고서를 펼쳐야 하는 이유는 기술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기술을 파괴적 혁신으로 이끌 창업가정신이 제도적 관성화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다시 실패가 허용되는 가장 위험하고도 자유로운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뛰어난 기술 엔지니어를 넘어 혁신경제를 이끌 창업가를 길러내는 것, 그것이 터먼 박사가 50여년 전 우리에게 남긴 자유로운 한국 사회를 위한 초석을 완성하는 길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